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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향 가는 길

ktman 2008.04.21 22:50 조회 수 : 6451

 남들 잠든 시간에 강변을 달려 , 땀으로 젖은 몸을 시원한 바람에 식히며 달빛에 살짝살짝 드러나는
강물을 바라보고 있을 때 새벽으로 달리던 심술궂은 찬바람이 땀 젖은 가슴을 서늘한 칼 바람으로
찌르며 도망간다.

 잠시 동안이지만 냉기서린 그 바람은 어떤 겨울을 , 어릴 적 많은 기억을 남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
떠올리게 했다.  내 고향 익산 ,  단지 태어났다는 것 만으로 나는 고향이라고 부르지만 그렇게 말 하기엔
 
쑥스러울 정도로  다른 곳 (경남 진해) 에서 자랐다. 하지만 그곳이 나는 좋았고 자유를 만끽하며 유쾌한
일만 기억에 남아있는 그 시절이 언제나 그립다.

1.jpg

 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겨울방학이면 부모님이 자랐고 내가 태어났던 고향 큰집과 산
너머에 있는 외갓집에서 시간을 보냈다. 그곳엔 항상 즐거움이 넘쳤는데 무엇보다도 따뜻한 진해에서는
보기 힘든 눈을 실컷 볼 수 있어 좋았고 사촌들이 많아 신나는 일들이 항상 많았다.

 

 비슷한 실력끼리 패를 지어 장기시합을 했고 , 운 좋은 날은 공기총 들고 참새 잡으러 다니는 삼촌을
따라 다닐 수 있었고 , 장착 패는 재미에 그 다음 날 손가락이 퉁퉁 붓기도 했으며  , 밥할 때 아궁이에
지푸라기를 밀어 넣으며 도시에서는 하지 못한 불장난도 마음껏 했다,  또 사촌 형 따라 그물채 들고
개울로 나가 수풀을 뒤지면 운 좋을 땐 예쁜 붕어가 한번에 몇 마리씩 걸려들기도 했다.불 땔 때 사용
한다고 형,누나들과 삼삼오오 뭉쳐 다니며 따서 모은 솔방울이 한 가마니는 되었으며 , 작두로 소 여물
써는 일이나 "꼬끼오~"  닭 우는 소리가 들리자 말자 내 달려  달걀 꺼내오는 것,  지푸라기로 새끼 꼬기
그것도 재미없으면 한번 누르면 한 바가지나 되는 물이 통쾌하게 쏟아지는 펌프질도 나에겐 재미있는
일이었다


3.jpg

 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그런 기억들이 펼쳐 졌던 고향 가는 길은 항상 즐거웠다. 진해역에서 삼랑진
역까지 간 후 , 대전가는 기차로 갈아타고 , 대전역에서는 시외버스로 갈아 탄 후 전주로 간다
.
전주에서는 삼례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30분쯤을 달린 후에 그곳에서 1~2 시간을 더 기다린 후 다시
왕궁면가는 버스를 타고 20분을 내쳐 달리면 면이라고 하기엔 조금 규모가 작은 왕궁면소재지에
도착한다.
버스가 넘어가는 언덕 행길가에 외갓집이 눈이 띄게 서 있고 외갓집에서 산 너머 5
떨어진 곳에 큰집이 있다. 그렇게 5번의 차를 갈아 타고 외갓집 문을 두드릴 무렵이면  언제나
어둑어둑한 저녁이었다
. 

 보통 외갓집에서 하룻밤을 지새고 그 다음날 두 살 위 외사촌 형과 놀다가 저녁 먹고 큰집으로 가는
데 중학교 때부터는 버스가 다녔지만 나는 항상 걸어 다녔다. 5리 길이라 멀지도 않았지만 오랜만에
찾은 고향 길을 버스로 가기엔 너무 아까웠다. 풋풋한 흙 냄새가 좋아서도 아니고 특별한 분위기를
주는 길도 아니었지만 난 외갓집에서 큰집으로 넘어가는 그 길을 걸어서 가는 것이 이유 없이 좋았다.


<큰집에서 1Km쯤 떨어진 곳에 있는 국보 제 289호 익산 왕궁리 5층 석탑>
4.jpg

 시골이라 마을을 벗어나자 말자 막막할 만큼 깜깜해지지만 그런 어둠 속을 조금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
어둠이 낯설지 않게 된다.  따뜻한 한 낮에는 눈 녹은 진흙탕 길로 얌전한 행인의 걸음을 뒤뚱거리게
만들었을 그 길이 겨울 밤 매서운 찬바람에 기도 펴지 못한 채 꽁꽁 얼어 찌부러진 신발 자국 형상만
남긴 채 울퉁불퉁해져 있다. 복수라도 하듯 뾰쪽하게 튀어 올라온 흙더미들만 일부러 눌러 밟으며 걷다
보면 어느 새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

 

 낮은 산 언덕을 살짝 넘어가면 길 옆으로 드문드문 묘지들이 보여 가끔 섬뜩하기도 했지만 곧 정겹기
그지없는 약한 불빛들이 하나 둘씩 보이면서 저 멀리 할머니,큰아버지,큰어머니 그리고 사촌들이 반갑게
맞아주는 고향집이 나타난다
.

<익산 금마면에 있는 국보 11호 , 동양 최대의 석탑이라 불라는 미륵사지 석탑 주변의 복원 예정도>
mi.JPG

 마을로 들어서면 드문드문 꺼질 듯 켜져 있는 희미한 불빛들이 시골 마을 내 고향에 왔음을 알려주고
컴컴한 골목을 대충 더듬어 조금 들어가면 나중에 친해져 꼬리를 흔들 큰집 개들이 하루 종일 놀고먹은
것이 미안한 듯 더욱 충실히 짖어댄다.

 

 익산을 떠나 머나 먼 타향 , 진해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신 부모님 덕(?)에 고향을 찾을 때 마다 나는
언제나 최고의 손님으로 환대를 받았다. 1년에 한번 오는 손자,조카다 보니 할머니 , 큰아버지,큰어머니의
따뜻한 손길은 물론이고 사촌 형,누나들의 반가운 인사말들로 시끄러웠다. 우리가 들어서는 그 순간 형제
많음을 자랑하듯 정 넘치는 소리가 조용한 시골 밤 하늘에 울려 퍼졌다.

2.jpg


 그리고 도착한 그날부터 다시 떠나올 때까지 많은 기억들은 내 일생에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이 되어 나의
(
) 어딘가에 기록돼있고 그 기억들이 담긴 메모리 번지는 지워지지도 잊혀지지도 않는 견고함으로 가끔씩
나를 회상에 잠기게 한다.   

 

 어둑어둑한 산길을 혼자 걸어가면서도 행복했었던 고향 가는 길.

그 고향 가는 길이 즐거웠던 건 , 정 넘치도록 따뜻이 맞아주었던 할머니 , 큰아버지 ,큰어머니의 사랑과 사촌
형제들과의 정다운 만남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니었을까? 이젠 그 시절로 갈 수 없음이 그 기억들을 더욱
그리움지게 만든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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